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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이후의 편지>

 

 

  저의 상상과 제 몸을 충돌시키고 여러분의 상상과 제 시간을 충돌시키고자 했습니다.

냉장고 추락의 굉음과 세탁기 소리, 여자의 악다구니 소리, 그리고 음습함과 밀폐성 등에서 더 이상 여러 가지 것들을 은폐하거나 피할 수 없는 공감각적 상태 속에 저를 떨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벌판 위의 나무처럼 팔을 벌리고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관조할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예민한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과 모든 지나가는 것들을 몸으로 맞는다는 것은 감히 '관조'라는 말을 넣기 민망할 정도의 무엇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일상적으로 쓰던 파장과 에너지를 쓸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제 몸의 맥과 압은 제가 상황을 파악하기 훨씬 전에 자신의 에너지를 어떻게든 소비하기 위해 도무지 투명하게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움직였습니다.

위는 갑자기 돌처럼 멈춰버렸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심장은 요동치고 근육이 경직되거나 온 몸이 떨리기도 하고...지나가는 무엇에도 덤벼들고 싶어지는..순간순간 정말 사소한 것에도 이를 악물어야만 참을 수 있는 고약한 심리 상태로 저를 몰고 갔습니다.

 

  많은 변화들은 제가 '사유'할 틈도 없이 몰아치고 바뀌고 흔들었습니다. 아마도 그게 정확한 상황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사유' 와 비교할 수 없는 정확한 상태의 경험 말입니다. 몰아침 속에서 저는 어떤 멍~ 한 상태..과잉 정보를 처리해내지 못하고 두 손 놓고 있는 멍청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무념무상이라고 한다면 우습겠지요. 그리고 무엇에도 정말 관심이 없는 이상한 상태가 왔습니다. 처음에는 극도의 이기적인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그것이 관계를 단절시켜 죽음을 가속화하려는 제 몸의 작용이더군요.  창 앞에서 빛을 받고 싶은 생각도 없어지고 바깥 날씨도 궁금하지 않고. 떠드는 입술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보고 싶은 사람도 먹고 싶은 음식도 없는... 그냥 앉아서 숨을 쉬고 몸에 휘둘리는 것만도 전혀 심심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것들이 성가시고 귀찮더군요. 부모 등 피붙이의 절절한 걱정에 저는 손톱만큼의 미안함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쇠약'이라 부릅니다. 저는 갇힌 생각을 하는 물건 비슷한 무엇이었습니다.  그러나 몇 일을 앓고 토한 후에 어떤 손님이 넣어준 초코케잌을 입안에 넣었을 때 온 몸이 그 맛을 미친 듯 쫓아가는 모양을 보며 이상한 우스움과 배신감도 들었습니다.


  저의 몸이 저의 상상과 충돌하며 그 상상을 우습게 만들어버리던 많은 순간들처럼 많은 이들의 감상 역시 벽에 걸린 한 점의 그림을 보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상상의 그림에 말을 걸고 화를 내고 배신을 당하기도 하구요. 대부분 먹을 것이 문제일 것이라 상상 할 수 밖에 없고..(저도 그랬었지요..)어떤 이는 제가 넣어준 식품을 먹지 못하는 것을 '끝장을 보려는 태도' 또는 '여유가 없음'으로 오해하고 타박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극단적 사건의 연출을 원하기도 했고...어떤 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도 좋은 것이라 강요하거나 좋은 행동으로 보이도록 제게 연기를 하라고도 하더군요. 저를 완결된 텍스트로 판단할수록 그들은 공간과 전시 자체에서 소외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덫을 쳐 놓고 미끼 노릇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4일 아침 쪽지를 붙여두고 나왔습니다.

그날의 어두움이 다른 날과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화분의 장미잎사귀에 곰팡이가 생길 정도의 음습함이 그냥 맑고 청명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분명히 약간 비가 온 흐린 날인데도 새소리가 다른 날보다 크게 들렸습니다. 마치 원래부터 이곳에 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던 집이 아득하더군요. 그렇다면...저는.. 제 뇌의 뉴런..구석구석들은 리셋되어 이제 안정된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원래의 집에서 지낼 때와 별반의 감각적 심리적 차이 없이 그냥 있으며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이젠 제 집이 이곳보다 더 낯설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면 이젠 또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구요.

마침내 더 이상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하는 이 노릇을 끝낼 때가 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것은 제 머리의 판단 이전에 제 몸의 판단이었습니다.3일 아침 만일 하루가 지나 4일 아침이 되었을 때 변화가 없으면 나가리라 했었고. 저는 4일 아침 확인했습니다.


  2주가 지나니..감상자들의 태도에서도 패턴이 감지되어 더는 다른 흥미로운 반응을 기대할 여지가 없었고 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실행 전 예상 그대로를 제 입이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토막토막 진술하더라도 그 말은 그 전과 다른 무엇입니다.

  집에 오는 길에 울퉁불퉁한 땅을 느끼며 심한 멀미를 했고 빛의 과함을 폭력적이라고 투덜거렸고 한 가지 냄새가 지나면 또 다른 냄새.. 끝없는 냄새에 미간이 찌그러졌습니다.

제 집의 흰 벽지가 정말 인위적으로 느껴지더군요.

뽀얀 이불도 비현실적으로 슬프고...발이 바닥에 닿지 않고 붕 떠있는 것 같은..아직 일상의 것들과 관계를 엮지 못한  저는 이상한 무관심의 상태..저는 지금 무중력 상태에서 겉돌고 있습니다.

  밤을 기다려 잠시 나왔을 때는 신호등의 빨간불이 어찌나 매력적이던지 빨간불을 기다리며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목욕탕을 가서 묵은 때를 씻고 미안한 몸을 달래주고.. 그래도 습하고 묵은 먼지 냄새는 깊숙한 어딘가 남아 있는 듯 합니다.


  집이고 밖이고 시끄러운 사방을 피해 오갈 데 없이.. 서 있는 차 안에 문을 닫고 세 시간을 앉아 있었습니다.

잠시도 고요할 때가 없는 그래서 예민해져 있는 저를 계속 산만하게 하는 무수한 낯선 것들에 온 몸으로 신경질을 내면서 적응중입니다.

 

                  

                                                                                                                                                                김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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