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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드(code)의 갱신(更新)과 변주(變奏)

- 《Coding Conversation》展의 성과와 의미 -

 

 

권이중 (작가, 前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

 

서 론

 

- 코드와 어법

 

 코드(code)와 어법(grammar)은 예술작품에 내포된 의미의 서술체계이다. 코드는 작가에 의해 규정된 기호의 체계를 통칭하며, 어법은 그러한 일련의 코드를 사용하는 구체적인 방법 또는 말투이다. 예술작품에 내용과 형식을 담보하는 구성요소이자, 그것의 예술적 가치를 판독하는 단초이다. 반면 작품속의 코드와 어법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체계와 달리 공통된 약호와 문법체계를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코드의 존재방식은 작가의 개별 미학에 의존하며, 여기서 1차적인 소통장애가 발생한다. 특히 미술 자체의 본질을 의문시하는 현대미술의 특성상 코드와 어법은 전략적으로 사용되며, 해석상 많은 난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파악할 때 미술사적 맥락이나 양식, 사조, 예술적 선언 등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도 있다. 이때 2차적인 소통장애가 발생한다. 여기서 장애는 '읽을 수 없는 것(허위와 사기를 내포한)'과 '읽을 수 있는 것(기존의 맥락에 비판적 성격을 지닌)'으로 구분되며, 그 여부는 비평적 담론의 영역에서 판명된다.

 

- Coding Conversation

 

 이번에 이문동 스페이스 집(Space Zip) 갤러리에서 열린 《Coding Conversation, 2009.8.16~9.30》展은 이와 관련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전시의 주제인 'Coding Conversation'에서의 코딩(Coding)이란 코드화(化)하는 문제, 즉 작가 스스로 예술적 언어를 구성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모색을 말한다. 그리고 다시 이것을 개별 작가의 고독한 탐구영역에서 벗어나 열린 체계 속에서 교감하자는 의미를 지닌다. 이를 위해 전시 기획자이자 참여 작가인 김도희는 11개 항의 아이디어를 제안한다.1) 이 제안은 파격적이고 기발하며 -무엇보다도- 현실 비판적이다. 제안의 목적은 미술세계에서 파생된 여러 부수적 문제들이 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잠식해가는 현 상황의 극복과 적절한 대안의 모색에 있다.

 

- 예술적 가치의 위기와 궤도 이탈

 

 과거에도 그랬겠지만,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의 고질병은 서구 미술의 양식과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소비하는데서 비롯됐다. 동시대의 예술적 과제를 숙고하고, 이에 상응하는 대응 미학을 모색하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파생된 작품의 외형적 양상만을 외피로 뒤집어 쓴 사이비 작가들의 득세가 문제였다. 그것을 마치 첨단의 신상품인 냥 취하는 맹목적 태도들 말이다. 기회주의적 작가들에게 그곳은 편안한 안식처일지 모르나 거기에 예술적 가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그것은 사기와 허위로 포장된 '읽을 수 없는' 유사작품에 불과하다. 또한 그것이  개인이 아닌 집단적 현상으로 발현될 때, 한국 미술의 문화정치학적 예속은 강화된다. 이는 비단 한국 미술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글로벌 경제의 잉여 자본이 미술계에 유입된 80년대 말 이후 미술 제도와 시장의 영향력은 점차 팽창하는 추세이다. 이미 위기는 전 세계적 현상이며, 창작 현장의 역동성은 핍진 상태다. 어쩌면 작가는 작품 납품업자가 되고, 비평가는 그 호객꾼이 될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작품과 상품의 구분이 불가능한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예술에도 사회적 기준들이 요구될 것이다. 합법적인 것, 허용된 것, 정상적인 것, 건강한 것, 팔리는 것이 창작의 전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금세기의 미술은 어쩌면 미학적 진보의 역사라기보다 끊임없는 혐오와 부정, 거부의 관습화 과정일지도 모른다. 혐오와 부정은 문제의식과 대응논리가 아닌 선천적 기질의 결과일 수도 있다. 미술의 과거는 참고는 하되 복제해서는 안 되는 불문율이고, 차용은 하되 동일한 미학적 모순에 직면해서는 안 되는 가치의 문제일 수도 있다. 미술의 재현적 환영을 부정하며 등장한 추상미술은 미학적 극복과 예술의 질적 상승을 동일시했을 것이다. 이것은 미학보다는 신앙에 가까운 태도다. 아니면 부정의 실천은 박물관을 가득 메운 재현미술의 주검에서 느낀 일종의 현기증, 혹은 혐오감의 표출일 것이다. 무엇보다 회화적 전통이 오직 사실적 재현만을 지향했다고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저 최소한의 존재방식에 불과하다. 조르죠 바사리의 낮은 안목에서 확립된 재현의 패러다임. 오직 그것만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따라서 고전회화속의 '재현'은 다분히 정치적 목적을 띠고 집중 포화를 맞았다. 마치 그게 지난 미술의 전부인 냥 취급되었다. 어쩌면 20세기 미술운동과 선언의 실체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프로파간다의 난동극이다. 구체적 현실에 대한 상황 논리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예술의 영속적 가치와 진정성을 담보할 순 없다. 그린버그와 여러 모더니즘 비평가들, 그리고 이후의 미니멀리스트와 개념미술가들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지탱한 것은 명징한 철학적 논리가 아니라 시대변화와 함께 폐기처분될 상황논리였다.

 

 서구 미술은 한국 현대 미술의 역사적, 지정학적 현재와는 몰관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70년대의 한국 현대미술은 흡사 종교적 배타주의, 민족적 순혈주의의에 버금갈 만큼 그 추종에 탐닉하였다. 그러한 탐닉의 바탕에는 '잘살아보세'나 '내가 최초론' 따위가 판을 친다. 이것은 여전히 현재적 상황이다. 서구미술의 맹목적 답습과 추종은 이미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혹자는 위의 주장이 부정적 상황인식에서 비롯된 비약이고, 빗나간 예측이라고 말한다. 그 점은 나도 알고 있다. 다만 거칠게나마 현 상황에 대해 개념 정리할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앞서의 상황들이 이번 전시의 문제의식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전시가 모든 문제를 치유할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궤도이탈을 꿈꿀 권리는 있다. 미약하지만 거부의 몸짓은 아름답다.

 

본 론

 

1. 전시 방법론에 관하여

 

 이번 전시는 그 성격상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첫 번째 작가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후속 작가들은 각각 선행 작가의 작품을 재료삼아 자신의 작품을 만든다는 점이다. 이 아이디어는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이자, 독창적 기획이다. 여기서 몇 가지 선행하는 사례들을 참고해보자. 이러한 흥미로운 비교를 통해 이번 기획의 참신성이 드러난다.

 

 가장 유명한 예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1953년 작 <지워진 데 쿠닝의 그림 Erased De Kooning Drawing>이다. 라우센버그가 웰렘 데 쿠닝에게서 받은 드로잉 작품을 지운 사건이다. 그가 작품을 지우는 데는 무려 6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두 작가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이었고, 따라서 라우센버그 자신의 개별적 성취에 속한다. 또 지워진 데 쿠닝의 드로잉이 어떤 것이었는지 판명할 자료가 없다.

다른 유사사례는 그보다 앞선 1921년 프란시스 피카비아의 <카코딜산 염의 눈 L'oeil Cacodylate>이다. 그것은 마르셀 뒤샹의 <샘 Fountain>과 마찬가지로 미술작품의 저작권에 관한 소유문제를 야기했다. 피카비아는 방에 빈 캔버스를 걸어 놓고, 방문한 사람들-대부분 예술가들-에게 낙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된 공동 작업이자 다다적 유희에 가깝다.

집단적 유희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이 작업을 '집단적 놀이(Jeux collectifs)'라고 불렀다. 화면을 분할해서 자동기술법적 방법으로 드로잉한 작품(후앙 미로, 만 레이, 이브 탕기, 무시가 참여)도 있고, 브로통과 휴고 발, 엘뤼아르 등의 공동 작품도 있었다.2) 그런데 이 작품들은 파괴와 훼손이 아닌 나열과 병치라는 방법적 특징을 지녔다.

 

 이러한 사례들을 언급한 이유는 이번 전시 기획이 미술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최초'의 방식이라는 '형식의 선점성(先占性)'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따지는 일은 '한국 최초의 양화 도입'이나 '한국 최초의 추상화' 같은 유치한 의미 선점 놀이일 뿐이다. 오히려 나의 관심은 이 전시방식이 거둔 흥미로운 성취에 있다.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겠지만, 네 명의 참여 작가들은 이를 통해서 새로운 예술적 체험을 하게 된다. 때론 서로 유사한 하나의 공명을 일으키고, 때론 그것을 변주한다. 단순히 선행 작가로부터 작업의 재료가 될 작품 하나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작품 제작을 위해서는 상호간의 보다 깊은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 이 사실이 흥미로운 이유는 대부분의 그룹전과 기획전이 바로 이 부분에서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 경우 누구와 함께 전시하는지도 모르고, 알더라도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기존의 전시는 진부하고 수동적인 기획의 틀로 인해 어떤 창의적 긴장을 만들지 못한다. 또한 기획자와 참여 작가 모두가 전시를 위해 존재하는 우를 범해왔다. 반면 이번 전시는 참여자 모두에게 흥미로운 기대감을 심어주었고, -제법 긴 전시기간에도 불구하고- 전시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개별 작가들은 상호간의 미술적 코드를 갱신하고 변주해 왔다.

 

 이러한 갱신과 변주는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 The Golden Bough』에 나오는 '숲의 왕' 시대를 연상시킨다. 이 신화는 살인을 통한 권력의 계승을 의미한다. 이탈리아 북부의 네미 호수 주변에는 디아나라고 불리는 신성한 숲이 있었다. 여기에는 신을 모시는 신성한 나무가 있고, 이를 지키는 사제가 있었다. 부족의 남자가 사제가 되려면 우선 이 황금 가지를 꺾어서 이 가지로 전임 사제를 죽여야 한다.사제는 '숲의 왕'으로 불렸다. 이러한 의식은 반드시 지켜야하는 율법이고, 사제가 되려면 먼저 살인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숲의 왕은 신의 대리자이다. 그런데 왕의 노쇠(老衰)는 곧 부족 전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늙은 왕의 살해와 젊은 왕의 승계는 부족 전체의 천재지변을 막기 위한 의식인 셈이다. 오늘날로 따지면 권력의 임기를 제한하는 제도와 같다. 늙은 왕은 바로 이 의식의 속죄양이다. 가뭄이나 홍수, 질병은 신의 노여움으로 여겼으며, 이를 달래기 위해선 끊임없는 갱신과 희생의 의식이 필요하다. 이 신화적 상징성은 단지 권력의 순환적 메커니즘이나 자연에 대한 경외심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미술의 영역에서도 상통한다. 20세기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미술적 담론들은 이러한 갱신과 희생을 통한 예술적 가치의 보존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갱신의 필요성에 가장 적극적인 동조자는 마르셀 뒤샹이었다. 그는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림도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림은 40년 또는 50년 후에 죽는다. 왜냐하면 그림의 신선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3)

 

 그래서 그는 박물관을 예술의 무덤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전시기획이 어떠한 성취를 거둘 수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예술의 존재방식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것은 유통기한을 매우 잘 지킨(?) 윤리적인 창작과 파괴였다.

 

 두 번째 특징은 작가들의 작품이 서사적 전개를 보인다는 점이다. 개별적 작품이 아닌 전체를 놓고 볼 때, 마치 생장소멸(生長消滅)하는 우주적 순환을 암시하는 듯하다. 게다가 이번 전시가 전체적인 주제설정이나 사전 합의 없이 이런 결과에 도달한 점이 놀랍기만 하다. 은유적 서사를 짐작할 만한 그 무엇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연기백의 작품이 혼돈에서 질서로 이어지는 운집의 과정이라면, 김성배의 작품은 인간 창조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어서 김도희의 작품은 인간의 죽음을 연상시키고, 다시 김학량의 작품에서 영겁의 삶으로 윤회하는 부활의 시학을 읽었다. 물론 누구든 그 과정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분명한 사실은 나의 감수성에 서사적 알레고리와 리듬이 감지됐다는 점이다.

 

 세 번째 특징은 창작과 전시, 관람과 기록, 아카이브와 토론이 모두 같은 공간에서 다뤄지는 강한 현장성이다.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상당히 충실했다. 여기서 기록과 아카이브는  사실상 전시기획의 기본에 속하지만 많은 전시에서 형식적인 것으로 취급되거나 쉽사리 간과되는 사항이다. 전시 초기 단계부터 큰 무리 없이 잘 준비되었고, 갤러리 내부공간이 짜임새 있게 활용되었다. 작업공간이 곧 전시공간이었고, 관람 공간에서 동시에 사진이나 동영상이 촬영되었다. 갤러리의 입구 쪽에는 참여 작가들의 지난 전시카달로그와 작품이 전시되었고, 회합도 여기서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개별 작품뿐만 아니라 기획의 능동성도 어느 정도 확보했으며, 여러 대안적 화두들이 부상했다는 점이다. 비록 기획자인 김도희는 전시 후기에 '실패를 위한 전시'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성공적 과제를 남긴 전시로 보인다. 특히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전시 기획이 어떤 결과를 낳는 지가 분명히 입증되었다.

 

 전시 막바지에 작가들은 미술에 관한 보다 진지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이 이 전시를 여타의 전시와 구분 짓는 '온전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은 작가가 작품을 만들고, 그걸 전시하고, 평론가가 거기에 몇 줄의 코멘트를 달고, 몇몇 관람자가 보고, 그러다 운 좋게 팔린다고 해서 갑자기 성취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미술에서의 일상적 단편들에 불과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한 개인의 고독한 성취가 예술이라는 공공의 담론 속에서 향유되느냐에 있다. 예술적 가치의 생산은 작가와 관람자, 평론가와 전시 기획자 등 모든 예술계의 주체들이 진정한 주체의 역할을 담당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현대 미술의 민주적 성격도 바로 여기 있다. 미술은 작가의 일방적인 선언이나, 평론가의 교조적 비평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오직 그들 모두의 비평적 담론 속에서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2. 개별 작품 분석

 

 처음 전시연구를 의뢰받았을 때 나는 그것이 무엇이고 어떤 역할인지 정확히 숙지하지 못했다. 개인적인 무능력 탓도 있었지만, 전시를 연구한다는 것이 내게 생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시는 구체적 시간과 공간을 갖는 구조이고, 그렇다면 비교와 분석을 통해 고찰된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역사적 고찰과 통계적 자료를 포함해야 하며, 정확성과 객관성이 필요한 작업이다. 물론 그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 기술될 개별 작가에 대한 나름의 분석도 그저 개인적이고 미욱한 감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미리 밝히고 싶다.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있다. 거기에 필자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이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선행된 몇 가지 사례와 작업들 혹은 양식들과의 비교 분석도 할 것이다. 이런 시도는 참여 작가의 수월성을 폄훼하거나, 창조성을 부정하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미리 양해구한다. 오히려 그러한 비교가 각각의 작품을 보다 선명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울러 독자에게도 감상의 적절한 참고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연기백 : 느림과 기다림이 말하는 것

 

신비로운 것은 완성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 가스통 바슐라르

 

 첫 번째 작가 연기백의 작품은 대충 펼쳐서 던진 신문지 위로 꼬깃꼬깃 열심히 구겨 던진 신문지가 덮고 있었다. 신문지가 내포한 코드는 무엇일까? 형상을 만들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형상을 지우기 위한 것일까? 그러고 보니 한 쪽 구석에는 종이 박스도 보이고, 신문지를 열심히 긁어낸 징표인 듯 방석도 놓여있다. 작가로부터 받은 전시 카탈로그들을 꼼꼼히 살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감상이 아닌 독해가 필요하다는 어리석은 생각에 작가에게 이것저것 질문도 해보지만, 묻는 이도 답하는 이도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 이에 앞서 나는 작가의 또 다른 전시인 《52동 106호-낯선 것에 대한 시선》을 보았다. 사람 둘 쯤 들어가는 협소한 공간에 뭔가를 감추려는 듯 비밀스럽게 놓인 작품들이 보였다. 그의 작품에 사용된 재료는 자연물이 아닌 용도를 다한 것들-헌 옷가지, 깨진 항아리, 낡은 의자, 혹은 작업장의 나무부스러기 같은- 이었다. 어쩌면 그 오브제들은 버린 자의 기억에서는 빨리 지워지고, 자연적 상태에서는 꽤 오랫동안 서서히 소멸될 존재였다. 적어도 연기백이라는 작가를 만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작가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버려진 물건들과 만난다. 그리고 '버려진' 물건을 '간직하는' 작품으로 탈바꿈한다. 거기에는 일련의 통과의례가 있다. 더디고 조심스럽고 천천히 익숙해지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바슐라르의 말처럼 신비로운 것은 바로 이 과정 자체이다.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헌옷을 한 올 한 올 풀어헤쳐 전시한 작품에 관해 이야기 했다. 그것은 얼핏 파괴적인 외형처럼 보였고, 그와 연관된 미술사적 문맥을 떠올렸다. 행위의 반복을 통해 드러난 작품은 시각적으로는 파괴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렘브란트의 <도살된 소>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영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섬뜩한 장면도 떠올렸다. 한편으로는, 과거 대역죄인에게 행해지던 거열형(車裂刑) 이나 육시(戮屍), 죄인의 포를 뜨는 잔혹한 능지처참의 대리물을 암시한다. 차이점은 그것이 생명체가 아닌 다만 쓸모를 다한 -요즘 사람들은 멀쩡한 물건들도 곧 잘 버린다-사물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기능적으로는 이미 죽은 사물들이다. 이런 상상도 해본다. 만약 데미안 허스트가 죽은 상어에게 똑같은 위해를 가했다면? 만약 비엔나 행동주의자들이 자신의 몸뚱이에 그런 짓을 했다면? 아마 섬뜩한 충격을 넘어 엽기적 사건으로 뉴스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연기백의 작품은 그럴 염려가 없다. 그런 심리적 충격은 살과 피부를 가진 생명체에서만 강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아니 그의 반복 작업은 시각적으로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것은 낡아빠진 티셔츠가 펼쳐져 만개한 꽃처럼 사뿐히 떠오르거나, 낡은 나무의자가 메마른 풀이되어 미풍에 흔들리는 듯하다. 이렇게 접근한다면 앞서의 잔혹극적 코드와는 정반대로, 자연 상태로의 인공적 회귀를 보여주는 작품이 될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그것은 감상자의 발견에 기인할 것이다. 나의 궁리도 그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나의 관심사는 작품의 완성된 상태보다 제작 과정의 '신비'에 있었다. 그러한 반복적인 작업의 포인트가 어디에 있는지는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형의 작업은 많은 인내심과 육체적 노동,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며 작가가 이런 방식을 택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법했다. 또한 행위의 반복은 기계적 숙달을 가져온다. 일단 요령이 생겨 익숙해지면 몰라보게 빨라진다. 그 때부터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유희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 유희는 결과지향적이 아니라 과정지향적이다. 쉽게 말해, '계속 반복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작위의 형태가 완성된다. 보통 그럴 때는 의미나 의도를 말하기 곤란하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의미 지우기가 아니라 형태 지우기를 위한 방법적 기술에 속한다. 작가와의 대화에서 나는 그의 작품이 작가 최병소를 떠올리게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작품에 도달하는 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공통점이라면 반복된 행위를 통해 대상의 물성을 생소하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점이고 나는 그 지점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각각 동시대 미술이 처한 상황논리와 그 전략에 있다. 최병소의 작업은 70년대 물성 회화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다니엘 뷔랭-혹은 그가 속한 B.M.P.T 그룹-이나 로만 오팔카와 같은 동시대 일련의 작가들의 반복을 통한 미학적 의미 지우기라는 화두와 연관되어 있다. 그것은 개념미술의 연장선상에 놓인 반복과 계수(serialism)의 형식이었으며, 행위나 완성된 작품의 중요성보다는 그러한 예술적 행위가 '의미 없음'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최병소가 뷔랭과 같은 작가들과 갖는 차이라면 그것이 의미지우기를 넘어 물성의 타자화와 연관된다는 점이다. 최병소는 오브제가 타자의 상태(다른 물성)로 보일 때까지 행위를 반복한다. 언젠가 그의 작업을 TV매체를 통해 본 적이 있는데 신기에 가까울 만큼 빠른 손놀림으로 종이표면에 볼펜 칠을 해나갔다. 반면 그러한 속도의 차이가 바로 그와 연기백의 작업을 구분하기도 한다. 연기백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행위의 속도는 조심스럽고 정교하며 느긋하다. 어찌 보면 사유적인 반복에 가깝다. 연기백의 작품에서 반복은 익숙해지기나 길들이기와 같은 보다 인간적이고 친밀한 심리적 스킨십에 가깝다. 그것은 쓸모없는 존재를 어루만지는 '쓸모없는 노력'의 소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뷔랭이나 최병소와는 다른 지점에 있다. 그에게 작품은 사물을 정서적으로 친밀한 대상으로 전이시키는 관계의 재설정 과정이다. 다시 말해 대량복제의 산물인 이름도, 표정도 없는 무표정한 상품을 작품으로 지위 승격시키는 과정이다. 상품은 닮아야할 대상, 즉 원본이 없는 복제물이다. 여기서 연기백의 역할을 그 복제물 중 불특정한 어떤 것을 가공하여 그 자체가 원본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원본에서 복제로 다시 복제의 복제(시뮬라크르)로 전개되는 벤야민과 보드리야르의 철학적 과업을 전복시킨다. 의미를 무화시킨 뷔랭과 달리 의미를 생성하고, 물성을 변이시킨 최병소와 달리 물성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라는 작품이라고 선언을 하는 제의이다. 친숙함에 이르기 위해서 그는 사물이 지닌 고유한 결을 거스르지 않고 존중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친숙함의 시간이다. 거대 담론보다는 일상적 교감에 가까운 이 행위는 오히려 더 큰 설득력으로 다가온다.

 

 신문지꾸러미 작품은 한편으로는 산등성이의 미니어처처럼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증식되어 서로 엉켜있는 편형동물의 무리를 확대한 사진처럼 보였다. 또한 신문지의 회색 바탕색과 알록달록 인쇄된 텍스트-이미지들로 인해 회화적 질감을 자아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미술보다는 심리학적 현상에 가깝다. 눈속임 그림(trompe l'oeil)처럼 어떤 작가적 의도에서 파생된 문제라기보다는 우연한 배치로 인한 환시효과로 보인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심리적 연상작용인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현상에 가까워보인다. 누구든 모호한 시각적 자극에서 유의미한 형상을 찾으려는 심리가 있고, 그것이 조형예술이라면 그러한 의지는 더 강렬하게 작용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두 번째로 진행된 작가 김성배는 이 작품의 심리적 파레이돌리아를 필연적 만남으로 연결시켜 설인(예티)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신문을 이용한 또 다른 작품은 종이 박스에 접힌 신문지를 놓고, 방석에 앉아서 프린트 된 모든 글자와 이미지를 칼로 긁어서 물풀로 덩어리를 만든 작품이다. 작품은 그의 <바래다, 표, Fade>에 나온 명함을 긁어서 종이가루를 쌓아둔 작품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신문지의 텍스트-이미지를 지우는 작업을 하던 최태신의 70년대 작품들과 비교해볼만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앞서 언급한 작가 최병소처럼 그도 주로 70년대에 그러한 작업을 했다. 물론 신문지는 조형예술의 영역에서는 꽤 친숙한 재료이다. 멀게는 피카소의 파피에콜레 작품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니 말이다. 그렇지만 최병소의 경우처럼 최태신의 작품과 연기백의 작품은 방법론적 유사성외에는 커다란 공유점이 없다. 그저 이 두 작가와의 비교는 연기백 작가의 작품의 특성을 명료하게 설명하기 위한 필자의 기술적 접근일 따름이다. 무엇보다 최태신의 신문작업은 70년대의 억압적 사회상황과 정치적 현실에 대응하는 작품이다. 그것은 동시대 작가인 김차섭의 <매스 미디어의 유물>이나 《제4집단》과 마찬가지로 시대정신에 바탕을 둔 것이며, 직접적으로는 누보 레알리즘과 네오 다다에 대한 양식적 반응이었다. 따라서 최태신의 지우기는 단순하고 거친 편이며, 회화적인 제스처가 강하게 느껴진다. 이와 달리 연기백의 작업은 이러한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인다. 그가 지운 신문(중앙일보) 1면에는 "악몽은 끝났다. 조국에 감사한다"는 헤드라인과 함께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유나 리 기자가 가족과 상봉하며 울먹이는 사진이미지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장면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선택된 것이 아니고 길에서 우연히 습득한 버려진 신문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지워진 이미지와 그의 작업방식이 어떤 일관된 코드와 상황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아니다. 만약 작가가 앞서 최태신의 경우처럼 시대정신과 정치사회적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면, 신문은 그다지 적절한 재료는 아니다. 70년대와 달리 오늘날 인쇄 미디어는 결코 빠른 매체가 아니며, 뉴스를 거의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휴대도 간편한 전파 미디어가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가 곧 메시지'이며, 미디어를 통해 인간은 확장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미디어를 테크놀러지의 발전과 직결된 문제로 파악했다. 더 나아가 보드리야르는 「커뮤니케이션의 무아경」에서 이러한 미디어의 발전이 인간의 리얼리티를 하이퍼 리얼리티로 마비시켰고, 이제 우리가 취하는 정보는 현실이 아닌 육체적 난교를 연상시키는 심리적 소여이며, 인간 자신이 네트워크의 구성물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보드리야르의 주장에 따르면 이제 우리는 현실과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전달해주는 매체에 탑승하고 있을 따름이다. 결론적으로 미디어는 메시지를 넘어, 심리적 쾌락장치의 단계에 이르렀으며, 뉴스는 사건의 공포와 괴리됨으로서 볼거리(스펙터클)의 요소가 된다. 실제의 전쟁이 오락게임처럼 편집되고, 대형참사가 실시간 스포츠처럼 중계되는 리얼타임의 시대에 인쇄 미디어인 신문은 그다지 적당한 소재는 아닌 것이다. 그의 지우기는 집요한 수작업과 집중력, 시간을 요구하며 그렇게 지워진 신문지 표면은 마치 부드러운 보푸라기까지 섬세하게 묘사한 듯 정교하고 부드러워 보인다. 모든 기사거리와 보도사진에서 긁어낸 종이가루들은 작은 경단 모양으로 응축되어 사진 한 켠-원래는 김칫국물 자국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에 풀로 붙여져 있다. 바로 여기에 이 작품의 주안점이 있다고 본다. 우리가 신문이라는 매체, 혹은 인터넷과 TV 뉴스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따스하고 아날로그적인 서정성을 이끌어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심스러운 처리는 자칫 진부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앞서 70년대의 두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작업방식이 새로운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반면 하이-테크(Hi-Tech)의 미디어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은 더 고차원의 하이-테크이거나 아니면 우회적으로, 그 자체를 조소할 만한 로-테크(Low-Tech)에 존재한다. 여기서 속도를 속도로 대응하는 전략은 연기백답지도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속도와 기술의 시대에 대한 초연함이 예술적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하이데거가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고흐의 낡은 구두그림에 대해 묘사했던 그 지점처럼 -물론 하이데거의 언급은 이후 샤피로와 데리다가 논쟁에 가세하면서 고흐의 구두논쟁 속으로 휘말려 들지만- 그의 작품은 인간적 느림과 접촉을 환기시킨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세계를 계시하고, 대지를 열어젖히는 존재론적 진리 같은 것에 관한 환기 말이다. 하이데거의 말에 동조하느냐의 여부에 상관없이, 연기백의 작품은 '커뮤니케이션의 무아경'에 수동적으로 내몰린 인간 주체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적 관점, 혹은 다분히 동양적인 사유 방식을 드러낸다는 점이 돋보였다. 실제가 더 이상 실제가 아님을 감추기 위해 보드리야르는 하이퍼-리얼리티라는 개념을 역설한다. 그렇다면 연기백의 태도는 이 전복된 관계의 정서적 회복과 연관된다. 이는 '느림과 기다림(遲遲)'의 미학과 더불어 그의 예술적 태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오늘날 모든 것이 빠른 세상이지만, 한 때 지구의 모든 속도가 인간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져 있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속도는 과학기술의 소산이다. 과학기술은 철학과 예술, 종교와 달리 속도의 가치를 숭배하는 영역일 것이다. 오늘날 속도는 편의성을 넘어 욕망을 추구한다. 문제는 과학의 과잉이 속도의 과잉으로 이어지고, 속도의 과잉이 다시 생산과 소비의 과잉으로 이어진 바로 그 악순환일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가장 구체적인 결함은 바로 산만함의 일상화이다. 일찍이 발터 벤야민이 지적했듯이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속도의 병, 즉 산만함이다. 편리하고 합리적이라는 모든 것은 우리 삶을 단순하게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복잡하게 만들었고, 복잡함은 인간의 '인간적'인 집중력을 붕괴시키는 산만함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동시대 정신문화의 위기는 인간적 성찰의 시간적 결여를 조장하는 잡다한 소여거리들의 탄생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김성배 : 다른 예술을 위한 전략

 

 이번 전시의 두 번째 참여 작가인 김성배는 사실 작품의 실체를 미학적으로 규정하고, 작품을 구성하는 코드와 어법을 일일이 설명하는 게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나는 작가 김성배의 작품을 책과 도판을 통해서 여러 번 접해왔으나 실제 작품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작품에 대한 기술이 일반적인 미술의 문맥에서는 해석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많은 작가들이 나름의 미학적 정체성과 예술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도 그런 작가 중 하나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의 작품은 내용과 형식의 결합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미학적 조형의지가 아닌 전혀 다른 부분에서 그 예술적 중요성이 형성된다는 점이다. 

 

 다만 추상적이고 모순된 어법으로나마 그의 작품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다른 근원의 논리를 따르는 미술' 쯤으로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의 작품에도 분명 논리가 있다. 그런데 그 논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성적 체계로서의 논리가 아니다. 논리가 지향하는 바도 예술이나 창작과는 거리가 있다. 즉, 일견 매우 논리적이지만 그것을 파악할 즈음에는 미술이 그 논리를 전개시킨 목적이 아니라 수단임이 발견될뿐더러 예술을 미술사적 맥락에서 사유하는 일반 감상자들에게는 아주 당혹스러운 문제로 귀착하게 된다. 가령 뒤샹의 <샘>은 그저 남성용 소변기에 불과한 작품이며 그것을 열심히 들여다본다고 해서 그 의미가 더 발견되진 않는다. 통념의 전복을 통한 정신적 가치의 회복은 작품의 이면에서 치밀하게 계획되고 실천된다. 그런데 만약 그러한 일련의 작품제작이 매번 다른 방식과 스케일로 나타나는 작가가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는 김성배 작품의 논리를 이러한 지점에서 파악한다. 그의 작품도 한갓 물질에 불과한 작품이나 미적 감상의 도구를 만드는 것보다는 작가 자신의 예술적 '생존'을 위한 전술상의 사물에 가깝다. 그는 매번 작품을 만들 때마다 자연과 작품을 간섭하는 개입자로 역할하며 이를 통해 예술적 자기규정의 난관을 벗어난다. 한마디로 나에게 김성배라는 작가는 기존 작가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에서 파악되는 몇몇 중요한 작가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우회적 방법론이 새로운 미적 탐구나 미학적 쇄신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의 통 큰 전략은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것인데, 여기서의 생존은 매번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생동하게 만든다. 또 창조적 인간인 예술가를 자연스러운 상태로 유지시키기 위한 비책이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그런 상태를 현실적으로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매번 자기복제의 유혹에 빠지게 되고, 급기야 예술적 생동을 상실한 매너리즘에 빠지기 때문이다. 김성배는 때론 가뿐하고, 때론 대범하며, 때론 엉뚱한 방법으로 이 난관을 빠져나오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 그러한 창작 태도의 이면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스케일이 있기도 하고, 예측하기 난감할 정도로 해학적이고 유쾌한 해결책도 있다. 예술가로서 작가 김성배의 특이점은 바로 이러한 작가적 존재방식에 있다.

 

 작가는 연기백의 전작에서 히말라야의 준산(峻山)을 떠올렸음이 자명하다. 그는 약 10여 년 전부터 인도와 네팔, 히말라야 일대를 도보여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여행은 등산가들의 산악 트래킹과는 약간 다른 목적을 지닌다. 거기에는 미술의 외변에서 새로운 미술의 영역을 발견하기 위한 보다 원대한 구상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그의 접근방법은 전작 <흑백논리>, <해탈불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 그가 연기백의 신문지꾸러미 작품을 재료삼아 선보인 설인(Yeti)도 그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선보인 그의 작업은 크게 세 작품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작품은 첫날 조규현 선생과의 2인 퍼포먼스이고, 두 번째 작품은 먹물로 채색한 신문지꾸러미를 노끈으로 단단하게 묶고 그 위에 흰 눈의 모자를 씌운 듯 설탕가루를 뿌린 설인 작품,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쪽 벽면에 전시된 검정바탕의 노란색 오브제 작품이다. 한편 김성배 작가는 멀리 수원에서 이문동 전시장까지 거의 매일 출근하듯 나와서 작업에 임하는 작가적 성실함도 보여주었다.

 

 첫 번째 작품, 2인 퍼포먼스에 관해서는 당사자 중의 한 명이었던 미술애호가 조규현 선생의 글이 충실하기에 그의 글로 대신한다.

 

 두 번째 작품인 설인은 전체적으로 정성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예티(Yeti)는 신비의 베일에 싸인 설인(雪人)이며, 주로 히말라야와 네팔 근방의 고지대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동물이다. 발자국 크기가 코끼리만 하다고 하니 적잖이 거대한 동물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용이나 인어처럼 상상계의 동물은 아니다.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심심찮게 목격담이 기사화되기도 하는 존재이며, 작가 또한 그러한 목격자 중의 한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작가와 담소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와 연관하여 양자역학에서 언급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ödinger's Cat)'와 평행우주에 대해서 언급한 바가 있다. 설명하자면,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인 슈뢰딩거는 1935년 재미있는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한다. 무쇠로 만든 상자 안에 고양이가 갇혀있다. 그 옆에는 독가스가 들어있는 밀폐된 병이 있고, 그것을 깨기 위한 망치가 설치되어 있다. 이 망치는 방사능 측정기에 의해 작동된다. 측정기 옆에는 우라늄 조각이 있다. 우라늄은 불안정해서 언제 방사능이 방출될지 예측할 수 없다. 만약 방사능이 방출되면 측정기가 망치를 작동시킨다. 그러면 병이 깨지고 독가스 때문에 고양이는 죽는다. 이때 일반상식처럼 고양이가 죽고 살 확률은 각각 50%이다. 문제는 언제 죽음에 이르는지는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리학은 그저 통계적 수치만 보여준다. 따라서 고양이는 곧바로 두 개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즉 죽거나 살게 된다. 그렇지만 실제 고양이가 둘 중 어떤 상태인지는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즉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삶과 죽음의 중첩상태에 놓이게 된다. 만약 이러한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를 두고 슈뢰딩거의 옹호자였던 아인슈타인과 반대자였던 보어가 세기의 논쟁을 펼친다. 결국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몇 과학자들이 내놓은 대안적 이론이 바로 평행우주(multiverse)라는 개념이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똑같은 우주가 여러 개 공존한다고 가정한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만약 뚜껑을 열었을 때 고양이가 살았다면, 동시에 고양이가 죽은 세계도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히말라야의 예티와 같은 신비의 설인이나, 스코틀랜드 네스호수에 산다는 네시같은 거대생명체도 이러한 이론대로라면 또 다른 평행세계에서 우리와 똑같은 현재를 살고 있다고 가정해볼 수 있으리라. 인간의 눈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자 한다. 보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으며,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쥐가 달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하늘에 달이 떠있지 않느냐"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어쩌면 김성배는 인간의 이러한 우매함을 조롱하듯 존재와 상상 너머의 내러티브에 관해 이야기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 작가가 만든 것이 정말 예티인지에 관해서 미심쩍은 부분도 있다. 신비의 설인이 어떤 생김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에 그 모양은 그냥 눈사람을 닮아있다. 눈사람은 '사람'을 닮은 모양일 뿐 예티처럼 생명체는 아니다. 색깔도 눈을 뭉쳐서 만들기 때문에 흰색이다. 그의 작품도 먹물로 검게 칠한 신문지를 마치 눈덩어리처럼 뭉쳐서 수직으로 쌓아올렸다. 차이가 있다면 형태보다는 색깔과 재료에 있다. 둘 다 팔, 다리 없이 오직 머리와 몸통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다만 그의 작품에는 흰색의 설탕가루가 고깔모자처럼 뿌려져있다. 물론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자신이 보았다는 영물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면 이 작품의 의미는 엉뚱한 방향으로 집중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 정도의 시각적 정보는 작가의 멘탈리티와 리얼리티로 선회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로 한정되어 있다.

 

 세 번째 작품은 마치 이와 동조를 이루듯 한 쪽 벽면에 설치된 검은색 바탕-아들의 하드디스크 케이스라고 한다.-위의 이상한 오브제 작품이다. 이 오브제는 작가가 아스팔트 차도주변에서 휴대전화를 받던 중 우연히 발견한 차선 도색용 도료의 조각인데, 작가는 도로의 움푹 팬 곳에 있던 이 도료의 모양이 마음에 들어 다음 날 기어코 그 장소에 다시 가서 떼어왔다고 한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그 모양이 마치 미래의 인간 형상을 암시한다고 한다. 작가는 미래의 인간이 이러한 형상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그렇게 보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상상계의 조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이 되었든 필자가 이 작가에게서 주목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우연한 형상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작가에게 필연적 만남으로 인식되었느냐 이다. 또한 그러한 기이한 형상의 오브제가 그에게 어떠한 논리로 인해 미술로 수용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그에게 히말라야는 "세계를 융합할 수 있는 강력한 다리역할의 기능"4)을 지닌 존재이다. 아울러 그것은 하나의 전략적인 프로젝트이다. 그는 "서구로부터 유입, 차용된 미술사조 등에 편입되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한국 현대 미술계의 -이런저런 전술은 있으나 전략이 부재한- 실상을 비판하는 계기"5)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구 문화예술의 지배현상에 대응할 만한 실체로써" 백두대간과 히말라야, 멀리는 북 아프리카의 이집트를 잇는 거대한 맥(脈)의 궤적을 구상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화적 대응논리는 자못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보이지만, 그가 보기에는 오히려 서구의 각종 비엔날레가 전술적 형태의 문화상품이라는 측면에서 더 관념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작가 김성배의 큰 그림은 당장의 현대 미술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아니 그러한 구체적인 예술작품이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전술적 차원의 문제일 뿐이다. 그보다는 미술과 정신문화를 내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전략이 필요한 셈이다. 특히 그는 예술에 있어 전략과 전술이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작가가 어려서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병법서에서 기인한다. 그는 여상(呂尙)의 『육도삼략 六韜三略』이나 노자(老子)의 『도덕경 道德經』을 애독했다고 한다. 이러한 병법적 전략으로 말미암아 서구 현대사회의 문화적 종속을 극복하고 다가올 미래에는 새로운 미술문화를 제어할 수 있는 아시아적인 근본뿌리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그러한 분명한 목표를 위해 작가 김성배는 다소 더디더라도 우회적인 루트를 찾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그의 논리가 황당하고 현실성 없어 보이겠지만, 나는 미술의 역사가 그 가능성을 이미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잔이 평생 작업한 공간은 예술의 도시 파리가 아닌 엑상프로방스의 시골 언저리였고, 아를르와 남불을 보헤미안처럼 유랑한 고흐의 처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렘브란트는 말년에 인적이 끊긴 쓸쓸한 아틀리에에서 굶어 죽었으며, 뒤샹은 자신의 생애의 많은 부분을 작품 제작이 아닌 서양장기로 소일했다. 그렇지만 미술사가 그들을 기억하는 이치는 김성배의 큰 그림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에 둔 논리에서 배태되는 그의 작품은 기존의 서구 현대미술의 전통과는 다른 근원을 지닌다. 이것이 그가 해발 6,174m의 성산 캉 린포체(카일라스)를 <흑백논리>에서 묘사하는 기이한 방식이었고, 한편으로는 히말라야의 설인을 예술의 전면에 내세운 전술적 명분이었다. 그에게 우연이란 인(因)과 연(緣)의 끈으로 단단히 연결된 내면의 필연이다.

 

 

김도희 : 알레고리의 단절을 위한 역설적 치유

 

외로운 불꽃이여, 나는 홀로 있다.

- 트리스탄 차라

 

 세 번째 참여 작가는 이번 전시의 기획자이기도 한 작가 김도희이다. 그녀의 작품은 앞서 프레이저의 '숲의 왕' 이야기에서 했던 비유가 그대로 들어난다. 이것은 작품의 화장(火葬)이면서 동시에 갱신이다. 그것은 얼핏 주술적 제의로 비춰진다. 프레이저에 의하면 주술은 종교의 등장 이전 시대에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던 유일한 힘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는 것은 주술이나 종교가 아닌 과학으로 대체되었다. 한편 리얼리티의 측면에서는 그녀의 전작 <신치로이드 60>이나 <손톱산수>처럼 어떤 육체적 고통에 대한 암시로 읽힌다. 그것은 고통의 본질을 공격함으로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일종의 맞불작전 같은 것이다. 

 

 뜸을 뜨는 행위는 원래 동양의학에 있어 치유를 목적으로 한다. 반면 김도희의 이러한 행위는 치유와 제의라는 양가적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만약 그러한 치유와 제의가 작품의 표면에 존재한다면 다음과 같은 두 단계의 설정이 가능하다. 먼저, 돋보기로 집열(集熱)된 태양광선을 통해 뜸에 불을 붙이고 점차 타들어가는 '치유'의 단계가 있고, 이후 뜸이 모두 타고 열기가 신문지에 전달되어 설인이 죽음에 이르는 화장 '제의'의 단계가 있다. 이것은 원시신앙의 속죄양인 동시에 숲의 사제에 가해지는 상징적 죽음을 암시한다.

 

 반면, 알레고리적인 원형상징이나 해석의 유혹에서 벗어나 보다 직관적인 인식도 가능할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문지를 불태울 때 '신문지를 죽였다'고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종이가 타서 재가 되는 것은 대단한 사건은 아니다. 말하자면 작품의 물리적 상태가 바뀌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나의 의문은 그저 신문지가 돋보기로 태워지는 과정이 왜 나에게 -앞서 원형적 해석처럼-'죽음'으로 인식되었는가에 있다. 뜸은 마치 다이너마이트의 도화선처럼 신문지꾸러미를 태우기 위한 촉매제에 불과했지만 나는 연속되는 전시의 맥락에 의해 그것을 치유나 제의의 과정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이번 전시기획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문제로 보인다. 즉 연속된 작품의 갱신이 대상을 서사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알레고리의 혐의에서 벗어나서 바라보면 이러한 이벤트는 어쩌면 흥미진진하고 유희적인 시도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하나의 이벤트이다. 따라서 태워지는 대상(설인)은 작품에서 이벤트에 필요한 소품으로 지위가 격하되고, 그 자체가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 의미가 전이된다. 이벤트는 퍼포먼스와 마찬가지로 일회적인 상황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작가와 어시스턴트들은 모두가 작품의 요소에 해당된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이 치유나 제의와 연관성을 지닌다면 그 대상은 작품이 아닌 작가를 향한 것이다. 김도희는 작업노트에서 "예술은 내게 있어서 실재에 대한 욕망이나 그것과는 어긋나 살고 있는 나 스스로를 위한 잠깐씩의 정직이거나 해소일지도 모른다."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그녀의 화장(火葬) 이벤트를 서구 미술에 있어 선행된 두 작가의 화형식(?)과 비교해보도록 하자.

 

 첫 번째 이벤트는 1970년에 있었다. 이 경우는 사실 더 끔찍한데(?) 이 요란한 화형식의 집행자는 존 발데사리였다. 뉴욕 유대인 미술관에서 열린 《소프트웨어》전시의 일환으로 그는 <화장 프로젝트>를 보여주었다. 작업실에 팔리지 않은 채 쌓여서 점점 자신의 활동반경을 좁히는 번거로운 작품을 모조리 부셔서 불태워버린 것이다. 그리고 타고남은 재는 6개의 상자에 고이 모셔졌고, 심지어 브론즈로 제작된 작품의 묘비명까지 만들었다. 필자도 부피를 차지하는 성가신 작품을 태우거나 부셔서 버린 적이 있었고, 그러한 행위가 얼마만큼 홀가분하고 카타르시스를 남기는 지를 잘 알고 있다. 한편 김도희의 이벤트에도 그런 홀가분한 해소와 치유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발데사리가 자신의 작품을 태웠다면, 김도희는 김성배의 작품을 이어받아 태웠다는 점이고, 발데사리의 경우처럼 관을 짜거나, 묘비명을 남기는 번거로운 행위 따위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타고남은 재를 그저 모아서 전시장 같은 위치에 두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놓인 장소가 갤러리가 아니었다면 그것은 영락없는 쓰레기를 태운 잿더미에 불과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제기된다. 즉 그것이 전시공간에 놓였을 때 얻게 되는 특수한 지위에 관한 것이다. 단지 전시장 안에서 적절한 할로겐 조명이 비춰졌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예술작품의 맥락을 점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적 행위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 전시의 특성상 다음 참여 작가에게 넘겨지는 최소한의 바통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는 그것이 점유한 공간으로 인해 작품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이클 프리드가 「미술과 사물성(1967)」에서 리터럴 아트(미니멀 아트)의 사물성을 비판하기 위해 제시한 연극성(theatre)의 개념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김도희의 작품은 연극성보다는 오히려 갤러리라는 공간의 지위와 그 공간에 자신을 종속시켜 반응하는 관람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감상하는 것 자체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예술작품의 예는 김도희의 작품 중에 또 있었다. 김도희는 전시 초기 아카이브용으로 전시한 작품 중에 300와트의 전등에 임연수를 말리는 작품이 있었다. 그 작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생선의 고약한 비린내로 인해 철거되었는데 이 작품 또한 위의 잿더미 작품(?)과 똑같은 예술작품의 지위를 잠시나마 얻게 되었다.

 

 두 번째 이벤트는 비교적 최근인 2006년에 있었다. 영국작가 안소니 곰리의 <소모된 사람Waste Man>6)은 그 형식상 김도희의 작품과 유사하다. 이 작품은 30톤 분량의 버려진 목재와 가구를 모아서 약 6주에 걸쳐 완성한 거대한 사람모양의 작품이다. 이 작품 속 인물은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모세이다. 이 프로젝트는 페니 울콕(Penny Woolcock)이 감독하고 2007년 영국의 채널4에서 방영예정이었던 드라마 <출애굽기 Exodus>를 위한 것이었다. 드라마 로케이션에 앞서 촬영지인 영국 Kent주 Margate시에서 기념행사가 열렸고 여기서 이 거대한 작품의 화형식이 시민들의 볼거리로 제공되었다. 곰리는 영국 예술위원회와 아트엔젤, 채널4의 지원으로 이 작품을 제작했다. 따라서 사람형상의 작품을 불태운다는 공통점은 있으나 그 의미는 김도희의 작품과 전혀 상반된다. 일단 규모면에서 각종 중장비와 인력이 동원된 거대 프로젝트와 낙엽으로 만든 뜸 몇 개와 두 사람의 보조자로 진행된 조촐한 이벤트라는 차이를 보인다. 곰리가 영국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듯 작품에는 막대한 상업 자본이 투자되었지만 이 작품의 본질은 예술적 성취가 아닌 공공 서비스에 가까웠다. 곰리의 작품은 말 그대로 볼거리였고, 공중파를 통해 영국전역에 실시간으로 방영되었다. 이에 비하면 김도희의 작품은 단 두 명의 보조자와 함께 건물 옥상에서 치러진 다분히 개인적인 이벤트였다. 무엇보다 김도희의 작품은 시각적 즐거움(spectacle)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볼거리를 소거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그 행위에 대해 사유하도록 만드는데 있다. 기 드보르는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스펙타클은 이미지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라고 말한다.7) 스펙타클의 산재는 현대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나타나며, 상품의 대량생산과 상호경쟁을 통해 증식된다. 또한 물신적 현상의 강력한 변호자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미니멀리즘 이후 현대미술은 조형예술 고유의 볼거리를 점차 제거시켜나가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제 볼거리의 헤게모니는 미술이 아닌 자본주의의 삶에 있으며, 사람들은 볼거리를 찾아 미술관이 아닌 영화관이나 놀이 공원에 간다. 이러한 현상은 한편으로는 미술의 사회적 고립을 초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펙타클을 포기함으로써 예술적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다. 미술이 스펙타클에 집착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작품이 아닌 상품의 범주로 나아가는 것이고,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이런 자본의 언저리에서 기생하여 유명세를 타는 작가들도 있는 법이다. 김도희의 작품에서처럼 이제 미술은 예술적 체험과 사유를 위한 최소한의 볼거리만을 필요로 한다. 그 이상의 장식은 오히려 예술의 궤도를 이탈할 수 있는 위험한 첨가물일지도 모른다.

 

 김도희의 작품에 담긴 기본적 구상은 파괴를 통한 갱신이다. 여기서 갱신은 작품 자체를 다시 새롭게 한다는 의미보다는 작가 자신에 대한 것이다. 작품은 파괴의 대리물 역할을 한다. 새로움은 '창조'와 '더함'의 의미가 아니라 상태의 '회복'과 '치유'에 가깝게 느껴진다. 치유를 위해 작품을 핍진시키는 것이며, 이처럼 자아의 대리물을 활용함으로써 작가 자신의 파괴와 소진을 회피한 채 새로움을 얻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도덕경』 22장에 나오는 '폐즉신 소즉득(敝則新 少則得)'. 풀이하자면 '부서지면(혹은 깨지면) 곧 새로워지고, 적으면 곧 얻게 된다'는 구절과 상통한다. 따라서 그녀의 이벤트는 핍진성을 확보하기위한 행위이다. 앞서 작업한 김성배의 전작<下下 소나무>는 같은 책 바로 앞 구절인 '곡즉전(曲則全)' 즉 '굽은 것이 곧 온전한 것'이라는 구절에 연관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두 작가의 공통된 태도를 겸손이나 유연성 같은 윤리적 가치가 아니라 우회나 작전상 후퇴와 같은 전략적 가치에서 찾고자 한다. 김성배는 『도덕경』에 대해  "동양철학의 고전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은 대단히 유력한 병법서"라고 말한바 있다.8) 혹자는 왜 미술에서 작전이나 전략, 전술과 같은 용어가 사용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현대미술에서 전략을 빼고 논할 수 있는 작품이 과연 얼마나 될까? 미술에는 더 이상 고정될 실체가 없고, 미술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매순간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그녀의 이벤트는 작품의 파괴라는 점에서 반달리즘(vandalism)이나 우상파괴주의(iconoclasm)와도 연결된다. 반달리즘이 타문화와 종교에 대한 배타와 무지에서 비롯된 파괴행위라면, 우상파괴주의는 성상(icon)의 숭배를 이단시하는 종교적 독단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행위는 주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예술의 영역에서도 활발히 수용되었는데 미래주의, 다다, 플럭서스, 그 밖에 유럽의 상황주의자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들 중 일부는 '예술의 폐지'에 관심이 있었다. 분리된 활동으로서의 예술 범주를 해체하고 다시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여러 아방가르드 운동은 사회적 성격을 취했으며, 그들에게 창작은 유희로 대체되었다. 그렇지만, 예술에 있어서의 반달리즘이나 우상파괴주의는 역사적이고 실천적인 사건은 아니다. 그들은 박물관을 불사르고, 광장의 동상을 파괴하자고 외쳤지만 실제로 행하진 않았다. 그것은 다만 그들의 내성적 활동에 국한되었다는 점에서 예술의 카테고리를 파괴하지 못했다. 플럭서스에서 활동한 벤 보티에의 작품 <라벨이 붙은 성냥갑>에는 박물관과 모든 예술작품을 불태울 목적으로 이 성냥을 사용하라는 요란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으며, 훗날 어느 소장가의 컬렉션에 고스란히 보관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벤 보티에의 작품은 앞서 존 발데사리나 안소니 곰리의 경우처럼 서구의 유물론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반해 동양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김도희의 작품은 실천적일뿐더러 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에 비하면 벤 보티에의 작품은 예술에 대한 치기어린 살인 미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도희의 재가 예술의 범주에 마지막으로 걸칠 수 있는 지점은 그 잿더미가 여전히 전시공간에 놓여있으며, 이벤트의 순간이 동영상로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작품은 전시가능성과 보존가능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물론 그녀의 작품이 완전 소거되어 탈물질화하거나 기록되지 않는 몸짓에 불과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생각은 오히려 예술 작품의 존재방식에 집중된다. 그것이 어떻게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만약 예술 작품이 작가와 관람자를 잇는 매개체라면, 거기서 예술은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해야하며, 어떻게 인식되어야 하느냐는 문제다. 또한 작가의 진정성이 거기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물론 이 의문은 결코 간단한 풀리지 않는 미완의 과제다.

 

 어찌되었든 김성배의 작품은 김도희를 거치면서 열역학 제2법칙과 함께 대부분 소실되었다. 볼거리의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은 공기 중에 떠도는 미미한 열에너지에서 위안을 찾아야 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마지막 참여 작가가 남아있다는 점이고, 최소한의 질량이나마 그에게 넘겨졌다는 점이다.

 

김학량 : 의인법적 친화와 풍류

 

 본래 한중일의 한자문화권에 있어 글과 그림의 근본은 같은 데에 있다. 중국의 한자는 그림문자이다. 그 각각의 형상이 뜻(部)과 소리(音)에 따라 상하좌우의 구도에 서로 조합됨으로써 확장되는 문자이다. 나무가 한 그루면 나무木이고, 두 그루면 수풀林이며, 세 그루면 나무 빽빽할森이다. 따라서 문자의 조합이 복잡해질수록 회화적 구도가 복잡해진다. 글자의 수가 영어나 다른 문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이유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는 일종의 원근법 체계이다. 하나의 글자에 형상이 들어오는 숫자에 따라 시야에서 점점 멀어진다. 이것을 기호(code)의 원근법이라고 본다면, 거기에는 서구의 과학적 원근법과 같은 시각적 환영(illusion)이 아닌 의미적 환영이 발생한다. 서구의 원근법이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시작된데 반해 한자의 원근법은 이를 훨씬 능가한다.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의미적 풍경을 그리는 실제의 행위이며, 글을 쓸 줄 아는 이는 모두 화가가 된다. 획을 긋는다는 것은 '쓰다(writing)'인 동시에 '그리다(drawing)'를 내포한다. 서(書)가 곧 화(畵)고, 화는 곧 예(藝)가 된다. 이것을 서화동체론의 근거라고 한다면, 한자문화권에 있어 문학과 미술의 경계는 모호하다.

 

 문인화에 있어 시(詩)는 서(書)의 예(書藝)로 나타나며 그림(畵)은 예의 서(書)로 나타난다. 즉 시(詩)는 기표로 그리기이고, 그림은 기의의 쓰기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하나의 화면에 여백이라는 장치를 통해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조우한다. 서구의 회화가 화면전체를 색으로 채우는 방식을 통해 서로 살을 섞는 성적 관계를 은유한다면, 문인화는 적절한 거리를 두고 대화를 주고받는 사회적 관계를 은유한다.

 

 갑자기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은 이유는 네 번째 참여작가인 김학량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의 작품을 전통의 현대적 표상-전통의 현대화가 아니라-으로 이해하며, 이를 통해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가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그가 던지는 화두들은 현대 미술이 추구하는 중요쟁점이나 맥락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애써 무시한다는 측면에서 앞서 김성배와 마찬가지로 전략적이라고 느껴졌다. 그것은 미술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에 관한 끊임없는 회의의 다름 아니지만 그 의미를 집요하게 천착하는 대신 그러한 물음에 선행하는 물음 혹은 물음의 주변에서 간과된 물음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접근된다. 그는 2008년 기획전《촉 觸》의 기획 글에서 "예술은 마음 짓기, 마음 씀씀이가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것은 동시대 미술 문맥에서의 지정학적 방점 찍기를 시도하는 여타의 작가들과 그를 구분하는 지점이며, 마치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처럼 '의미'와 '독해' 강요 속에 인수 분해되어 버린 예술에 대한 감성적이고 경쾌한 접촉에 다름 아니다. 알고 보면 현재의 우리를 지탱할 과거는 역사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고고학적'으로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러한 화두를 '전통의 현대화'라는 상투적이고 맹목적 수사와 연결시키면 곤란하다. 전통의 현대적 '표상'과 전통의 현대화는 다르다. 여기서 표상은 전통적 양식의 답습이 아닌 전통적 멘탈리티의 다시 드러남(re-presentation)을 말한다. 따라서 복고가 아닌 극복을 위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미술에 있어 '한국적'이라는 용어를 부정적이고 고리타분한 주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마치 이 용어에서 물레방앗간이나 초가집이 들어간 그림을 떠올리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적인 것과 한국의 전통적인 것은 다르다. 우리는 아무런 꾸밈이나 과거로 돌아가려는 수고 없이도 이미 한국적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非한국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의 개별성이 어떻게 보편성과 만나느냐의 문제이고, 그것은 결코 진부하거나 유치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 필자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작가 김학량과는 사전에 이렇다 할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몇 번 시간을 내어 인터뷰를 할 생각도 했으나, 끝내 성사시키지 못한 게 아쉽다. 그 이유로는 아무래도 개인적인 핑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한편 그의 작품 중 일부는 필자가 구상했던 작품과 묘하게 중첩되어 다가왔다. 가끔 내가 생각했던 것을 아무런 인연이 없던 어느 작가가 했을 때의 소름 돋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거부감이나 공감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각자의 삶에서 느끼고 경험되는 마음의 섬세한 떨림의 중첩상태이다.

 

 여기서 김성배의 예티는 김학량의 손에서 풍류객(風流客)9)이 되어 부활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김성배의 경우처럼 의인(擬人), 의산(擬山)의 지위를 확보한다. 그리고 연기백의 경우처럼 작품의 제작은 곧 '그'와의 친화 과정이 된다. 친화는 물아일체를 위한 살의 섞기가 아니라 단지 유희적 대상으로서 사이 좁히기(親)이며 그 목적은 풍류를 함께 즐길 벗을 구함에 있다. 따라서 김도희로부터 물려받은 잿더미는 그를 위해 여러 대상적 존재로 변주한다. 그의 작품은 이 두 풍류객의 짧은 유랑을 기록한 일종의 관광사진이며, 조선 후기 회화에 대한 경쾌한 오마쥬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노자가 말한 '도법자연'의 세계로 들어간다. 도(道)는 '스스로 그러한 세계(自然)'를 본받는데 그것은 작가의 내면적 산수의 그림자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데로 그의 작품에서 화제와 작품의 구분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어느 한 쪽은 회화적이고, 어느 한 쪽은 문학적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 둘은 자웅동체(雌雄同體)이다. 일찍이 소식(蘇軾)은 왕유의 시를 논하며 '無聲詩, 畵中有詩, 有聲畵, 詩中有畵'라 말했다. 소리 없는 시는 곧 시 속에 그림이고, 소리 있는 그림은 곧 그림 속에 시라는 말이다. 이러한 시와 그림의 불가분한 진동이 그의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작업노트에서 작품의 재료가 될 김도희의 재와의 만남을 "설중방우(雪中訪友)"라 했다. 그렇지만 정작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났지만 다시 기다려야 했다. "저는 태평하지만 나는 온통 불안하다." 그사이 '재'는 '그'가 되었다. 이제 그것은 작가가 유희할 수 있는 대상이 된 셈이다. 여기서 나는 육조 혜능의 "非風, 非幡, 心動" 즉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아니요, 깃발도 아닌 바로 마음이라는 문답이 떠올랐다. 마음의 일을 스스로 깨닫는 자오(自悟)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 예술적 태도의 본질은 동양적 멘탈리티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것은 비록 <고약한 선물>이었지만 최초의 말 걸기를 통해 벗이 되었고, 이윽고 풍류를 즐길만한 유희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전시장 바깥으로 나와 멀리 행주산성 근처 한강 가에서 둘 만의 호젓(?)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의 구분법을 해체하는 '짓'이며, 새로운 조우를 통해 스스로가 하나의 산수를 이루는 풍경이다. 이것은 대상과의 친화를 통해 새로운 준법을 터득한 겸재 정선의 그것과 유사하다. 많은 이들이 겸재의 그림을 진경산수화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에게 진경은 실제의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보고 그리는 사실의 재현이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대상과의 친화를 통해 대상 고유의 결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를 표현하기위해 숱한 훈련이 요구되고 끝내 새로운 준법을 찾는다. 그것은 눈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이며, 바라봄의 문제가 아니라 다가섬의 문제이다. 이것은 액상프로방스의 촌로 폴 세잔이 먼 길을 굽이돌아 겸재와 합일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한 것들은 눈감아도 보이는 경지의 문제인 셈이다.

 

 사진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연출된 상황은 일시적이긴 하지만 흡사 실제의 풍경 사진으로 착각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또 그 흑백의 질감은 수묵의 정취를 자아낸다. 이는 서구 회화의 재현적 환영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이유로 그것과 상관없는 것이 된다. 우리가 무엇에 관해서 말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그 무엇이 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실은 앞서 서두에 언급한대로 마치 꿈속에서 상상적 풍경을 거니는 것처럼 의미적 환영을 일으킨다. 그 풍경이 가상이 아닌 실제라고 착각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이 그렇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동양화의 현란한 준법은 디지털 카메라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거치면서 차갑게 단축되었고, 적당히 사실이고 적당히 가상인 아늑한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공산에 명월>에서는 김성배적인 우연이 감지되는데, 벽에 걸린 둥글게 재단된 비닐(明月에 해당하는 달)은 사실 김성배 작가가 작업하는 과정에서 먹물이 바닥에 배이지 않도록 바닥에 깔아둔 것이었다. 이것은 3차원의 공간에 설치된 산수화이다. 따라서 전통적 산수화의 빈 여백은 빈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그것은 우연하고 얘기치 않게 얻어진 재료였지만 김학량의 연출로 인해 기발한 작품의 재료가 되었다. 비닐 표면의 얼룩은 정말 달 표면을 묘사한 그림처럼 느껴졌다. 김학량의 작품은 벽면에 전시된 여러 장의 사진과 하나의 설치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여러 장의 사진은 풍류의 결과이다. 내가 진정 보고 싶은 것은 어쩌면 작품보다는 그런 유쾌한 생각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두뇌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생산적일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어쩌면 예술의 비(非) 서구적 근원들에 공통된 관심을 지니는 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무책임한 마지막 서술어가 그것에 대한 불확정적 상황을 한층 강조하는 지도 '모르겠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고, 그 존재는 어쩌면 평행우주 너머 어딘가에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궁리하고, 그 자신과 예술을 갱신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존재이다. 오늘날 현대 미술이 규정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만 선언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자체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미술 세계의 현실에서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단토가 말하는 '예술의 종말'이나 아도르노가 말하는 '자명성의 상실'도 아니며,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무아경' 따위도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러한 이론들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들'이 속한 세계의 반쪽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저(低)개발 된 세계의 저 건너편에서는 그런 것들보다 기아와 빈곤, 전쟁과 질병이 고통스러운 세계가 놓여있다. 그것은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위선적으로 강요되는 비현실적 지식인지도 모른다.

 

 예술적 교감을 회복하기 위한 대화는 이제 겨우 시작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기회가 우리들에게 남겨졌다면 우리는 그것이 어떠한 방식이어야 하는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술의 또 다른 존재방식을 설정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완결성은 현실 공간에서 실현가능한 가시적 상태라기보다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에 가깝다. 그래서 완성된 미술작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망막의 쾌감을 주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완의 작품이다. 작품의 완성은 작가의 예술적 행위가 잠정적으로 중단된 추상적 상태를 의미할 따름이다. 또한 관람자에게 있어 그 의미는 최종적으로 작가의 손을 떠난 바로 그 상태를 통해서만 겨우 독해가 가능하다. 여기에 약간의 상상력만 동원한다면, 예술적 행위의 진행과 정지 사이에는 무수한 고민과 좌절, 시행착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포착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작품의 진행과 정지 사이의 미묘한 떨림을 일깨워 준 참신한 기획이었다.

 

1) 「Coding Conversation」 전시 초대장 참조.

 

2) 신현숙(1992), 『초현실주의』, 서울: 동아출판사, p.99

 

3) 피에르 카반느, 정병관 역(2002),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서울: 이화여대출판부, p.129

 

4) 김성배 외(2009),『슈룹: 슈룹 프로젝트 20년 백두대간-히말라야』, 경기: 글을읽다, p.6

 

5) 김성배, 같은 책, p.181

 

6) http://www.themargateexodus.org.uk/home.html

 

7) 기 드보르, 이경숙 역(1996), 『스펙타클의 사회』, 서울: 현실문화연구, p.11

 

8) 오상길 외(2007), 『김성배, 우연과 필연사이』, 서울: ICAS, p.192

 

9) 나는 개인적으로 '유목적(nomadism)'이라는 들뢰즈 풍의 표현을 싫어하며, 굳이 필요할 때는 '난민적(안식처를 찾기 위해 불가피한)' 혹은 '풍류적(유랑 자체를 즐기는)'이라는 단어로 구분하여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