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d Wetting, boys urine on paper,840x300cm,2014
Kim Dohee's Bed-Wetting is actually composed of urine stains, it also reminds a Korean masterpiece Dream journey to the Peach Blossom Land by An Gyeon. Viewers cannot avoid the unpleasant odor of the piece, which cuts through the exhibition space. This sensorial torment as a pungent admonishment in a physical form by forcing the viewers to face their severe traumas and suppressed emotions. The artist was inspired from the children who pee in the bed by the nightmare due to their bad memories.
"What I really wanted to show is how much more cisceral a person is than a word or an image. Actually, I cannot saythat i didn't really want the work to be situated as an object for safe appreciation, sheltered in a museum for people to regard with their hands clasped behind their back. Anything that is really alive has the power and potency of the stench of urine. no living thing can be a torment, even when we encounter it eye-to-eye. Actual existence might be something you grab in pitch darkness, or the ultimate fear or disgust, or something that is impossible to behold or handle. It might be like suddenly realizing the long-lost origin that we all share, which grips you so powerfully that you can't bear to look at it with the naked eye."
젊은모색2014 인터뷰
권용주: 김도희 씨는 오래전부터 신체에 대한 관심이 있지 않았나요? 작업에서요. 지금은 사라진 ‘스페이스 집(Space zip,동대문구 이문동)’이란 공간에서 근무하실 때, 제가 보았던 김도희 씨의 작업 중, 사포에 손톱은 문질러서 산수화 같은 그림을 그리셨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김도희: 커다란 사포 위에 손톱으로 긁어서 산수를 그렸었죠. 저는 리얼리티가 없으면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뭐가 리얼리티지? 그걸 어떻게 표현하지? 내가 느끼는 이 실재감을 어떻게 표현하지?..그러다보니 나는 왜? 하는 물음을 멈출 수가 없는 거죠. 그나마 조금이라도 실재적인 것을 말 하려면 나를 통과하는 것을 파고들 수 밖에 없어요. 아무리 완벽한 이야기라도 그저 담담한 개념으로 존재하는 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번드르르한 말을 많이들 하잖아요. 저도 대충 바람직 한 것이 뭔지는 알아요. 그렇지만 일상에서 무엇을 선택하거나 무엇을 좋고 싫음으로 나눌 때는 감정적으로 나가더라고요. 사람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엄청 복잡한 것들이 이상한 작용을 해서 직관적으로 감정적으로 선택을 해요. 그건 이 몸뚱이가 뭔가 화학작용 같은 것에 휩싸이는 거죠. 내 몸에서 일어나는 좋다 싫다하는 쾌, 불쾌? 꺼림 이런 것들이 개념이나 정보랑은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실재로 느껴지거든요. 나를 움직이는 물리적 실재요. 정말 뇌세포가 만들어지고 도파민이 생성이 되고, 그래서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걔네지, 추상적인 관념들이 아닌 거 에요. 그러니까 저는 그런 식으로 몸을 통과해서 나오는 게, 더 진짜 라는 그런 심증이 있어요.
권용주 : 미술관에 이번처럼 냄새나는 작업(‘야뇨증’)이 설치되었을 때, 사실 미술사에서는 그리 새로운 작업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국립현대미술관은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고 또 ‘관객=민원인’을 대상으로 한 공공기관이니까 ‘야뇨증’ 같은 경우는 작가의 의도를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관객이나 미술관에 불쾌함을 선사하려는 작업이 전혀 아닌 것 같은데요. 이런 오해를 일으키는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김도희: 저는 무엇을 썼는가보다 어떻게 썼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남은 영역에 누가 한발 더 진격해서 얼마나 날카롭게 감행하냐의 문제죠. 분란을 일으키려는 목적은 아니었지만 의도의 끝까지 가야했어요. 그래야 성립하는 작업이니까... 짓궂은 의도라기보다는...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이었어요. 내가 미리 작품을 허용 가능한 수준으로 죽일 수 없었고...끝까지 들이 밀어야 했어요. 엄청난 지린내 앞에서 거부감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거에요. 사실 이건 어떤 예술작품으로서의 감상의 거리를 주지 않아요. 그리고 이 안에는 읽을 네러티브가 없어요. 저는 그냥 육기肉氣라고 표현을 했어요. 제가 이 작업에 2가지의 작업을 붙였는데 하나는 ‘야뇨증’ 이고 하나는 ‘사람으로 진하게 흘러나와’ 였어요. 이 둘 중에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덜 감상적인 걸로 한 거에요.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은 말이나 이미지 이상으로 생생하다는 거에요. 지금 제가 느끼는 현실에서... 제 작업이 미술관에서 안전하게 뒷짐지고 서서 곱상하게 감상하는 대상으로 놓이는 게 싫었어요. 언제나 진짜 살아 있는 것은 지린내처럼 강렬 한거고, 사실 우리가 정말로 살아있는 무언가를 대면할 때는 그게 분석하고 감상할 꺼리가 될 수 없어요. 어떤 실재라는 거는 우리가 동공을 마주하고 대면하는 것조차 고역일 수 있는 거 에요. 실재라는 건, 새카만 상태에서 잡히는 것, 극한의 공포일 수도 있고 역겨움일 수 도 있고 감당하고 마주하기 어려운 것 일수도 있는 거예요. 각자의 오래된 근원. 그게 너무 세고 나를 휘어잡고 있어서 그걸 차마 맨 눈으로 볼 수도 없는... 그런 것일지도 몰라요. 제가 ‘콘크리트 시계’하면서 그런 말을 썼는데, 다 벗겨놓고 보면 나는 없는 거예요. 자아도 없고 김도희도 없고 사실 나는 아무도 아닌 거예요. 사실 그게 객관적인 사실이에요. 근데, 나는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이상한 건데...근데 내가 나라고 생각하고 나라고 뭔가 사고를 구성해서 뭐라고 이야기 하고, 이거 자체가 그로테스크 하거든요. 내가 정말 여기 태어나기라도 했나 이런 것. 근데 나는 뭔가 생생하게 느끼고 있고. 그럼 이건 뭐지?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 만월의 환영도 마찬가지에요. 나는 뭐지? 그 잡히지도 않는 새카만 상태에서, 새카만 것을 마주하거나, 새카만 곳에 던져져 있거나, 그런 거에 대한 공감각적 상태를 말로 기술할 수 있지만, 그게 정말 평온한 것인가 생각해 봤을 때는 확 미쳐버리지 않고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게 아닐까 해요. 우리는 모두 한 방울의 오줌 이었다 이런 얘기도 있잖아요.
권용주: 그런 부분 _ 뭐라고 해야 될까요? 방금 말씀하신 ‘잡히지도 않는 새카만 상태’ 같은 거요. 음. 근원적인 의심 같은 것이랄까?, 작업에서 그런 부분을 붙잡고 있으면 내적으로 고통스럽진 않나요? 물론 저를 포함한 다른 모든 작가들이 그런 것에 골몰할 때가 있지만요. 도희씨는 좀 더 깊게 생각하시고 또 작업을 통해서 신체적으로도 체험하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붙잡고 의심하고 깊숙이 파고들다보면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울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김도희: 가학적인 사람이 가학적일 수 있는 거는 그만큼 힘들지 않기 때문이거든요. 근데 저는 오히려 어떤 느낌이냐면, 일상에서 기만적으로 살고 그냥 나를 적당히 보호하던 것을 최소한 여기서 만큼은 홀가분해지는 것 같아요. 최대한 극단까지 확 가서 정화되고 홀가분해 지는 게 있어요. 그래서 다작을 못 하는 걸 수도 있지만, 그래서 저한테 예술이... 작업 한다는 것이 그런 부분이에요. 그 순간만이라도 최소한의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 그게 일상에서 대체 되지 않는 강렬한거에요. 그리고 이런 경험이 추상적인 게 아니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경험으로 몸에 새겨져요. 그리고 ‘뭔가를 마주쳤을 때’의 그 느낌을 계속 연장하고 자극을 한다고 해야 하나. 평소에 순간 순간 느끼던 어떤 실재를 작업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연장 하면서 느끼는 쾌감 같은 게 있어요... 나의 어딘가를 확 들춰 본 것 같은 거예요. 내 끝일 수도 있고. 인간의 바닥일 수도 있는 그런 쾌감을.
권용주: 말씀하신 것 중에 ‘예술이 자격을 갖추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부분이 있는데 어떠한 자격을 말씀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도희: 흔한 말 있잖아요.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 근데 아무거나 예술이 되면 안 된다. 모든 것에 열려있지만 그만큼 조심해야 하는 것. 쉽게 얘기하느니 그냥 암 말 마는 게 나은 거... 저는 지금이 막 떵떵거리며 나 예술가다 이런 말 하고 다니기 전혀 자랑스럽지 않은 시대라 생각하거든요. ‘야뇨증’에 제 오줌을 쓰는 게 가장 쉬었겠지만 차마 쓸 수 없었던 것이 그래서에요... 어른이, 제가, 혹은 어쩌면 예술이 어떤 자격을 상실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엄청 부끄럽기도 하고 막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